『여름, 꽃,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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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여름이었어. 노을이 너무 붉어서 눈물이 났어. 

햇빛에 눈이 따가워서, 여름이 너무 더워서 울어버린 거야.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이 이야기는,

외로운 사랑의 끝이자,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

그리고,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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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자 소개

[KPC]

张强林: 18, 男, 장치앙린. 

.

.

.

그가 죽은 이유는 자살이 맞다. 라비나 앞에서 떨어졌던 것도 맞고. 하지만 바로 죽지는 않았다. 원체 탄탄한 몸은 낙하조차 하나의 폭력으로 인식하여 충격을 상쇄했다. 결국은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당사자와 당사자의 보호자가 병원 이송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 날, 결국 그는 아버지, 그의 옛 주인을 죽이고 자신의 숨을 끊는데 성공했다. 피에 절어 바닥을 기는 와중에도 그는 칼을 쥐어 악착같이 복수했다. 아비는 과다 출혈이었으며, 아들은 익사였다. 그는 제 아비가 쓰던 욕조에 몸을 담그고, 얼굴도 모르는 어미의 복중에 기생할 때처럼 잔뜩 웅크린 시체가 되어있었다.

 

당신에게 연락한 사람은 그의 지인이었다. 눈이 가득 쌓인 듯 백색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는 놀랍게도 한 여름에 살을 드러내 놓지 않았다. 머리카락의 색이 반대라는 것을 빼면 죽은 치앙린의 시체와 정확히 같은 모습이었다.

 

당신과 웃고, 떠들고, 추억을 쌓고, 세상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노라,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그는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어딘가에 묻히지도 못한 채, 한 줌 뼛조각이 되어 여전히, 그 큰 저택 중 가장 작은 방에 있다. 철로 된 향로 하나, 향이 스무 대 들어 있는 상자 하나, 당신이 준 자잘한, 하지만 그에게는 분에 겨웠을 선물이 담긴 가방과 함께.

 

7월 15일에 올 당신만을 기다리면서.

 

 

[PC]

Lavina: 18, 女, 라비나.

 

 

 

▼시나리오 플레이 본문

 

잘 가, 린.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그래. 안녕, 잘 있어. 나중에 보자.

 

...

 

어쩌면 당신은 그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 모릅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그는 잘 들어주었겠죠.

 

무엇이든 좋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둘은 다시 살아가겠죠.

 

다음 생에서도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름, 꽃, 우울. 　　

 

KPC: 张强林, PC: 라비나.

 

7:30 PM2021.07.17

 

 

 

 

당신은, 라비나는...

 

...'그'를 바라봅니다.

 

.

 

.

 

.

 

.

 

수면 위를 부유하는 것 같던 정신.

 

흐릿한 감각 너머로 느껴지는 것은 걔의 시선이다.

 

먹먹한 귓가 너머로 들리는 앳된 목소리,

 

여전히 무표정인 얼굴.

 

그런 린이 묶은 머리를 어깨 너머로 늘어뜨리고 나를 향해 속삭인다.

 

 

나 갈게. 　　

 

 

정말로, 이제는 갈게. 　　

 

 

잘 있어. 　　

 

여전히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을 고한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듯 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린의 손에,

 

그대로 앉아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있는다.

 

내가 펴 놓고 잠들었던 노트 위로 삐뚜름한 한자가 쓰여진다.

 

 

我 喜欢你。 　　

 

읽을 수 없는 문자.

 

네 글자를 남겨두고,

 

그렇게 린은,

 

그는.

 

다음을 기약하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

 

6시 nn분.

 

창에 쳐진 커튼을 따라 노을의 붉은 빛이 교실 안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소리와 매미가 우는 소리뿐인 교실을 깨우는 벨소리.

 

무슨 일인지, 린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면,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작은 바람소리만이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온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后来，不... 下辈子见。我爱你。 　　

 

 

다음 생에도 널 만나러 갈게. 　　

 

툭, 전화가 끊어진다.

 

커튼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아래로.

 

누군가 추락한다.

 

둔탁한 충격음이 귀를 때린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들려오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가 무시했을 소리.

 

평화롭게 흔들리는 커튼,

 

이마를 간지럽히는 산들바람,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의 색채…

 

린이 사라진 세상은,

 

그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마치 그가 필요없는 사람이었던 것 처럼.

 

...

 

2020년 7월 9일.

 

그렇게 린은,

 

나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

 

.

 

.

 

당신은 눈을 뜹니다.

 

공기가 불쾌하게 호흡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그래요. 이건 모두 꿈입니다.

 

지독하게 정신을 갉아먹는 꿈.

 

...

 

일어나보니, 집입니다.

 

창문 밖으로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 매미소리가 들려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침대, 책장, 책상 정도가 있습니다.

 

July 17, 2021 7:39PM라비나:(언제나 내가 일어나고 다시 눕는 침대. 그런 침대를 새삼스럽게 내려다본다)

 

당신이 깨어난 침대입니다.

 

위에는 휴대폰이 충전되어있군요.

 

July 17, 2021 7:40PM라비나:..지금이 몇 시지.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킨다)

 

아침입니다.

 

오전 7시 41분 이군요.

 

그 밑으로는 알림이 여러 개 떠있습니다.

 

가장 위에는 밀린 일정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린이 사라진 날.’ 　　

 

7월 9일의 일정이니 벌써 일주일이 넘었습니다.

 

July 17, 2021 7:44PM라비나:(얼굴을 찌푸리며 알림을 옆으로 밀어 지운다)

(그가 내 일상에서 사라진 지 벌써 일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왜, 어째서.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을 너에게 물어본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네게 물어봤다)

(여기서 더 파고 들어가봤자 변하는 것은 없기에 침대에서 벗어나 책장으로 향했다. 잘 하면 읽지 않는 책정도는 찾을 수 있겠지. 이불은.. 나중에 정리하지 뭐)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제목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입니다.

 

읽었었던가.

 

기억의 바다 속에서 찾아 헤맨 결과는,

 

주인공이 자신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July 17, 2021 7:52PM라비나:재밌었던가.. (책의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책장에 끼워 넣었다. 내용만 흐릿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아 재밌게 읽었던 소설은 아니었나 보다)

다른 책은.. (책장을 조금 더 살펴본다)

자료조사

기준치:	55/27/11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보이는 것은 문제집 뿐입니다.

 

July 17, 2021 7:54PM라비나:평소에 책 좀 사둘걸. (문제집만 보이는 책장을 답답하다는 듯이 바라보다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책상 위에는 달력과 메모지 한 장, 빈 편지지가 놓여 있습니다.

 

July 17, 2021 7:57PM라비나:..정리 좀 해두고 잘 것이지. (아무 생각 없이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와 편지지를 치우려다 멈칫한다) 내가 이것들을 왜 꺼내놨더라.

 

메모지는 잔뜩 구겨져 있습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써 둔,

 

 

린의 집에 방문하기. 오늘은 꼭 갔다오기. 　　

 

오늘은 해야만 할 일정이었습니다.

 

시선을 조금 옮겨 달력을 보면,

 

7월 9일에는 린이 사라진 날.

 

이틀 전인 15일에는 린을 만나러 가는 날.

 

메모가 적혀있습니다.

 

달력과 메모지를 보고 있으니 상념이 떠오릅니다.

 

그의 기일과 그의 마지막 편지.

 

 

7월 15일에는 날 만나러 와. 문은 언제나 열려있을테니까. 그때는 중원절이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을게. 　　

 

July 17, 2021 8:01PM라비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맞아요, 당신은 그를 만나기로 했죠.

 

벌써 이틀이나 미뤘습니다.

 

두려움이 앞선 것인지,

 

그저 믿고싶지 않은 것인지.

 

그래서 결국 편지라도 써 들고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상념에 시선이 닿은 편지지에는,

 

 

ㅡ린에게, 　　

 

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불과 하루 전의 일일 텐데.

 

왜일까요,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느껴지는 것은.

 

July 17, 2021 8:25PM라비나:(편지지에 쓰인 린에게, 라는 단어를 손으로 쓸다 책상에 앉아 편지를 마저 쓴다. 나는 어떻게 지냈고, 네 죽음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라고 슬퍼했는지와 같은 조금의 투정이 담긴 글과 네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무슨 뜻이었는지에 대한 말들로 비어있던 편지지를 채워간다)

..이정도면 편지가 아니라 호소문 아닌가. (살면서 편지를 쓴 적이 있어야지.. 전혀 편지답지 않은 제 편지를 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린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 정말, 아주 많이.

(힘을 주어 썼기 때문일까. 다른 글씨보다 진하게 쓰인 마지막 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비어있었던 편지를 어떻게 채워야 하나 머리 아팠는데 네게 말을 했던 것처럼 이런저런 말들을 써 내려가니 편지지는 생각보다 쉽게 가득 채워졌다)

 

무엇이라도 좋았습니다.

 

그라면 다시 만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모두 좋아해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편지까지 모두 쓰면,

 

당신은 나갈 준비를 합니다.

 

옷을 입고, 간단한 소지품을 챙기고.

 

함께 하교를 했던 만큼,

 

둘의 집은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한없이 맑은 깨끗한 여름날의 아침 하늘.

 

그래,

 

분명 이런 풍경을 봤었죠.

 

그때는 그 아이도 함께 있었는데.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던가요.

 

분명 그때…

 

.

 

.

 

.

 

당신은 등교 중이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구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과 지면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소리.

 

그 아찔한 푸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교실에 도착해 창문 너머로 여름의 푸름을 감상하고 있으면,

 

July 17, 2021 8:30PM라비나: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교실의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면,

 

당신이 틀어두었던 시원한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조금씩 날리는 치앙린이 보입니다.

 

눈이 마주치네요.

 

치앙린이 작게 손을 흔듭니다.

 

July 17, 2021 8:32PM라비나:(먼저 손을 흔드는 네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흔든다)

 

July 17, 2021 8:33PM张强林:나비, 안녕. 이번에는 며칠 안 걸렀어. 학교. (네 뒷자리에 앉아 가방을 걸며 말을 걸었다.)

 

July 17, 2021 8:36PM라비나:..학생이 학교를 며칠씩이나 빠지는 게 말이 돼? 내가 목 빠지게 기다렸단 말이야! (몸을 뒤로 돌리고 불만스럽게 툴툴거린다)

 

July 17, 2021 8:39PM张强林:...나, 그냥 학생 아니야. (작게 손을 움직여 수화와 함께 말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어? ...다음에는 조금 더 일찍 오려고 음... 고생? 아니, 노력 할게. (미간을 찌푸려가며 단어선택을 했다...)

 

July 17, 2021 8:42PM라비나:이렇게 학교에 와서 내 뒷자리에 앉아 있는 주제에 학생이 아니라고 해봤자 아무도 안믿거든요. (어이없다는 듯이 널 빤히 바라본다) 응, 진짜 많이 기다렸어. 나는 너 없으면 얘기 할 사람도 없어서 네가 학교에 안오면 진짜 심심해. (그동안 쌓인 말들을 우수수 풀어내다 네 단어선택에 웃음을 터트리곤) 고생하면서까지 일찍 나오려 하지는 않아도 돼.

 

July 17, 2021 8:46PM张强林:...(내심 뚱한 표정 짓기. 티는... 아주... 진짜 아주 조금 났다. 입이 조금 옹졸해졌다.) 하지만... 나비, 나 말고도. 친구들, 많아.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나비가 왜 친구가 없지? 내가 옆에 있어서 다들 놀아주지 않는건가? 괜한 의심도 해봤다. 괜한 의심이 아니라 꽤 합당한 의문일 것 같았지만.) 고생, 아니야. 조금 노력하면 학교 일찍 나올 수 있다.

 

July 17, 2021 8:51PM라비나:걔네들이 친구라고? 아니야 걔넨 친구라기엔.. 음.. 거리가 있다고 해야 하나? 굳이 따지자면 친구보다는 지인이지.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말에 자기가 수긍한다) 진짜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너밖에 없을걸? 어때? 감동이지? 감동이지? (방긋 웃으며 네 팔을 콕콕 찔러댄다) 그래? 그러면 너만 목 빠져라 기다리는 나비를 위해 노력 좀 해주라.

 

July 17, 2021 8:55PM张强林:지인..? 아는사람..? 하지만 나는 아는 사람도 나비밖에 없다. 하지만 나비 친구다. 그러니까 나비한테도 그 사람들 친구...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이야기 하다가 진짜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하는 네 말에 말을 뚝 멈추고 너를 바라봤다. 아, 그런 의미.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속이 간질거리는게, 이번에는 불길하지 않고 오로지 기분만 좋았다.) 나도, 친구는 나비밖에 없어. 감동했어? (네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감동했냐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 내일...은 올 수 있을거야. 아마도.

 

July 17, 2021 9:02PM라비나:아, 웃는다. (조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놓치지 않고 캐치한다. 예전 같았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아주 미세한 변화지만, 이제는 착하면 척이다) 정말? 나밖에 없어? 그럼 우린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네? 갑자기 엄청 낭만적인 관계가 됐다. (감동했냐는 네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응! 엄청! 감동했어! 이따만큼! (양팔로 커다란 원을 만들며 네 말에 받은 감동의 양을 표현하려 애쓴다) 아마도가 뭐야! 꼭 와! 내일도 모레도! 그냥 나랑 약속하자. 내일도 모레도 노력해서 오겠다고. (새끼손가락을 내밀고는) 도장 복사 싸인까지 다 해놓을 거야.

 

July 17, 2021 9:09PM张强林:아, 안 웃었다. (입가가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빠르게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지만 나비에게는 티가 났을게 분명했다. 망할 얼굴근육. 분명 이상한 얼굴이었을텐데. 아버지께서 웃지 말라고 하신걸 보면 분명 웃는 얼굴은 이상할텐데.) 응, 나비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비는 다치지도 말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낭, 만... 적인건... 내가 낭만적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낭만적인 관계는 어떤 것일지 생각해봤다. 네가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 비슷한 증상이 있는 것, 같은.) 귀여워, 나비. 나비가 그렇게 팔 벌려도 내가 이만큼 감동했으니까 내가 더 감동했다. (길쭉한 팔을 쭉 폈다. 별 쓸데없는 짓거리였지만 그냥 말해보고 싶었더라.) ...아, 알겠다... 내일이랑, 모레.. 모레는... 잘 모르겠지만 노력, 많이 하겠다. (내민 새끼손가락을 보고 느릿느릿 다가갔다...) 만약에, 내가 약속 못지키면... 많이 혼나나?

 

July 17, 2021 9:24PM라비나:웃었는데? 웃었잖아. 어? 막 내가 친구 너밖에 없다고 하니까 기뻐서 막 이쁘게 웃었잖아 방금~ (씰룩거리는 네 입매를 가리키며 싱글벙글 웃었다. 아이 재밌어!)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거람!? 너야말로 다치지 말고! 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그래야 네가 오랫동안 내 옆에서 나랑 놀아줄거 아냐! (항상 눈에 띄게 늘어오는 네 상처들을 마구 가리키며 소리쳤다. 내가 이 늘어나는 상처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너는 모르겠지! 그러니까 막 다쳐오는 거겠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널 째려본다) 네가 낭만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낭만적이니 됐어. 균형도 딱 맞고 괜찮네. (낭만적인 린? 상상이 가지 않아서 큭큭 웃었다) 무, 뭐?! 너 언제부터 그런 말을 막 하게 된 거야! 반칙이다, 반칙! ..그 팔 길이도 반칙이야!! (귀엽다는 네 말에 당황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반칙이라며 소리치다 쭉 뻗어지는 네 팔을 보곤 질 수 없다는 듯이 제 팔을 더 뻗어본다) 내가 더 감동했는데! (팔을 뻗어도 네 팔길이를 따라가기엔 턱도 없었기에 마구 뛰어오르며 자기가 더 감동했음을 어필한다) 응 못 지키면 많이 혼나.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나를 더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혼나야지. 안 그래?

 

July 17, 2021 9:35PM张强林:아, 안... 안 웃었... 나는 웃는거 안 예뻐... 나비가 예뻐. (당황스러움을 가득 담은 채로 되뇌었다. 내가 웃는게 예쁘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일텐데, 아버지께서 딴 사람 말은 믿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말에는 이다지도 휘둘리는걸 보면 나는 널 꽤나 좋아하고 있는게 맞는 모양이었다.) 난, 안 아프니까 괜찮아. 나비는 다치면 아파. 나비 아프면 나도 같이 아파. 그냥 다치는 것 보다 두 배 더 여기가 아파. (네 말에 제 가슴께를 가리켰다. 손을 움직여 내가 슬퍼, 하고 말했다. 말은 제대로 못해도 손으로는 할 수 있었기에 무의식중에 꽤나 자주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그건... 맞다. 나비는 낭만적이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알려줘야 한다. (배우는 것 하나는 빨랐으니까. 그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낭만, 이라는 것은 보지도, 듣지도, 겪어보지도 못했지만 네가 알려주는 것이라면 잘 배울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반칙 아니다. 나는 반칙 안 한다. (내가 더 감동했다며 마구 뛰어오르는 너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이만큼, 하고 말하면서 팔을 뻗었다. 네가 있다면 이런 누가 보면 어이없다 말할 촌극도 그저 즐겁기만 했다. 지금까지의 생을 전부 다 보상해주는 것만 같이.) 나비가 슬플거야? 그러면 안되는데. (해맑게 웃으며 많이 혼난다는 네 말에 괜히 한 번 더 물어보았다. 괜한 물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밀고 있던 너의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이렇게 걸었다면, 나에게 큰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내일도, 모레도 널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만약에, 못 온다면 날 많이 혼내줘. 다음에는 나비를 더 오래 볼 수 있게.

 

July 17, 2021 10:05PM라비나:네가 아직 웃는 네 얼굴을 못 봐서 그래. 진짜 예쁘고 잘생기고.. 귀엽고... 또 뭐가 있더라.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너의 반짝이는 미소를 뒷받침해줄 단어들을 나열하다 네 뒷말에 멍청한 표정을 짓는다) ..어어 그치! 나비는 예쁘지 꽃 위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는 참.. 이쁘지! (어색하게 하하하 웃으며 말한다. 평소 내 장난에 당하기만 하는 네가 이런 식으로 날 당황스럽도록 설레게 만들 때마다 어떤 식으로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네 상처가 늘어날 때마다 너처럼 여기가 아픈데. (너처럼 제 가슴께를 가리키며 물었다. 내가 아플 때 두 배 더 아프다는 사람이 자기가 다쳤을 때 내가 아프다는 건 왜 모르는지 참.. 모르면 또 내가 가르쳐 줘야지 뭘 어쩌겠나) 그래서 내가 다 말해주잖아. 이건 어떤 거고, 또 저건 어떤 건지. 낭만도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줄게. 근데.. 낭만은 말보단 감으로 느끼는 건데 어떻게 알려주지.. (내가 엉망으로 가르쳐줘도 잘 배우는 네 모습을 보면 꼭 병아리 같았다. 뭔가.. 엄마닭을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다 배우려 하는 모습이 비슷하기도 하고..) 아! 반칙이 아니긴! 그렇게 길쭉길쭉하게 팔을 뻗어놓고는 뭐가 반칙이 아니야! (네가 앉아있어서 겨우 더 높아진 제 팔 높이가 네가 일어서면서 다시 낮아졌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더 높아질 방법을 고민하다 눈 앞에 보이는 의자 위로 올라가 너를 내려다 보고는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이제 내가 너보다 더 감동받았다는 것을 인정해! (이 유치한 행동들이 무슨 소용인지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너 하나 이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과 이런 자신의 유치한 도발에 반응하는 네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 아마.. 많이 슬프겠지? 나는 너랑 이렇게 얘기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니까. (너와 이렇게 친해지고 나서는 너를 보려고 학교에 나오는 나였기에 네가 결석한 날이면 우울했다. 분명 이렇게까지 좋아할 생각은 없었는데.. 감정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골칫덩어리였다. 이윽고 새끼손가락을 거는 너에 방긋 웃으며 네 손을 끌어와 도장과 복사 싸인까지 해버린다) 그래! 약속 못 지키면 내가 엄청 혼낼 거야! 왜 약속 안 지켰냐고 엄청 혼낼 테니까.. 잠시만, 벌써 약속을 못 지킬 생각부터 하는 건 아니지?

 

July 17, 2021 10:25PM张强林:나는 웃을 일이 없다... 나비랑 있을 때만 웃는다. 그리고 다 내가 웃지 말라고 했다. 나 못생겼을텐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신에게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의 나열에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여전히 표정에 거대한 변화는 오지 않았지만 미묘하게 상기된 뺨, 조금 더 붉어진 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너와 네 주위의 허공만을 바라보는 눈동자로 유추가 가능할 것이었다. 너라면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 나비도 예쁜데, 내 앞에 있는 나비가 더 예쁘다. 날아다니는 나비는... 찢어질 것 같다. 너무 약하다. (제 앞에 있는 나비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리고 나는 당연히 네가 더 좋았다. 그냥, 그냥 알았다. 직감적으로. 내 직감은 크게 빗나간 적이 없었으므로 이것은 꽤 정확할 것이었다.) ...나는, 집에서 잘 넘어져서 그렇다. 안 아프니까 괜찮다. 나비는 나보다 훨씬 더 작고... 약하니까 아프면 안된다. 많이 아프다. 누가 아프게 하면 나 불러야 한다. (제가 다치면 아프다는 네 말을 어물쩍 넘어갔다. 집에 들어갔으면 상처가 늘어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으니. 이제는 원래 다쳤던 곳에 때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걸 알까. 허황된 상념을 삼켰다.) 맞다. 나비 저기 앞에 서는 선생님보다 더 잘 설명해준다. 나비가 선생님 해야한다. (여기저기 네가 가는 곳은 되는대로 전부 따라다니며 너에게 말을 배우고, 어설프지만 예절이나, 문화를 배워가면서 생각한 모든 것이었다.) ...반칙 아니다. 나비가 반칙 했다. (조금, 아주 조금 입이 옹졸해져서 삐진 표정을 내비치고는 네가 밟고 올라간 의자를 보았다. 저 의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더 감동했을 수 있는데. 그것보다 더 나비를 좋아할 수 있는데... 내뱉지 못할 말들을 삼키며 조금 삐죽거렸다. 말도 안되는 유치함이었다.) ...하지만 나비 반칙 썼다. 하지만 내가 오늘은 져 준다. 나비가 나보다 더 감동 받았다... (의자 위까지 올라가서 자신의 감동받음을 표현하는 네 모습은 귀여웠지만 이런 것으로 삐지고 제멋대로 패하는 자신의 유치함은... 조금 쪽팔렸다... 하지만 네가 좋아했다면 그걸로 되었나, 싶었다.) ...그, 그러면 내일도, 내일 모레도 나오겠다. 나비가 슬픈건 싫다. (네 말에 급하게 약속을 덜컥, 잡아버렸다. 어떻게 될 지도 모르면서. 이번에도 스승님에게 신세를 져야겠지. 하지만 그걸로 네가 기쁘다면 나는 그에 대한 벌도 달콤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손을 끌어와 도장 복사 싸인까지 척척 해버린 네 손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 네 말에 퍼득 고개를 들었다.) 응, 나비는 나 혼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정신 차린다. ...아, 아니다... (흔들리는 눈동자. 그걸 감추기 위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July 17, 2021 10:56PM라비나:뭐어!? 누가 너보고 못생겼대! 그 사람은 거짓말한 벌로 지옥 갈 거야. 너 안 못생겼어! 멋있어! 잘생겼어!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예쁘다고! (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며 마구 칭찬해준다.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억지로 해주는 칭찬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었다. 그렇게 네 미모에 대해 찬양을 끝마칠 때쯤 상기되어있는 네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린, 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머, 어머 세상에! 하며 온갖 주접을 떨다 부끄러워하는 린 귀여워! 하며 밝게 웃었다) 그.. 어어... 음, 잠깐. 미안한데 눈 좀 감고 있어 봐. 지금 내 얼굴, 엄청 바보 멍충이 같을 것 같단 말이야.. (기껏 날아다니는 나비가 예쁘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는 기회를 너에게 주었는데 너는 자기 눈앞에 있는 나비가 더 예쁘댄다. 간질간질하고 반짝반짝한.. 그런 이상한 기분에 얼굴이 따듯해지는 게 느껴져 제 옆 머리를 끌어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네게 예쁘다는 말을 퍼부었을 땐 몰랐지만, 예쁘다는 말이 이렇게나.. 부끄러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게 뭐야, 순 엉터리잖아! 네가 안 아프다고 하면 뭐해! 내 마음이 아프다니까. (불퉁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넌데 너를 불러서 뭐 하게. (고개를 돌린 상태로 툴툴거리며 중얼거린다) 정말? 나 선생님 하면 잘할 것 같아? (네 말에 얼굴이 화악 밝아진다. 장래 희망이 선생님인 만큼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네게 듣는 말이니 더 기쁠 수밖에) 이건 반칙이 아니라 어드벤티지라는 거야. 내가 너보다 팔도 짧고 작은데 의자 정도는 쓰게 해줘야지. (삐진듯한 네 표정을 보며 제 옆구리에 양팔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다) 그래! 내가 더 감동 받은 거야! (네가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에 신나 활짝 웃었다가 자신의 유치함을 인지하자 너무 부끄러워져 얼굴이 좀 빨개졌다.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고 행동하는 꼴이.. 어린애 못지않았다) ..우리 방금 되게 유치원생 같았다. 엄청 유치한 싸움이었어. (분명..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가 않았다....) 정말!? 약속한 거다? 앗싸~ 내일도 모레도 린이랑 만난다~ (그저 내일도 모레에도 너와 만난다는 것이 기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이젠 정말로 네가 내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뭐어가 아닌데? 정말로 그런 생각 안 했어?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것을 빤히 바라보다 얼굴을 들이밀고는) 내 눈 똑바로 바라봐. 정말 안 했어? 진짜?

 

July 17, 2021 11:18PM张强林:맞다. 지옥갈거다. 제발 좀 갔으면 좋겠다. 아, 아니... 이러면 안되는데. 아까 말은 못 들은걸로 해줘라... 으, 아... 나비, 잠깐만... (네 말에 냄큼 고개를 끄덕이다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라면 여기에 있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전부 알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얼마나 더 혼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념에 빠질 새도 없이 네 칭찬폭탄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예뻐, 멋지다, 잘생겼다... 눈이 핑핑 돌고 원래도 미숙한 말이 더 미숙하게 나갔다... 분명 나비를 본 이후 가장 얼빠지고 바보같은 얼굴일 것이 분명했다...) ...아, 아니... 안 부끄럽다... 안... ...나비가 그렇게 얘기하면 귀가 뜨거워진다. 심장 너무 빨리 뛴다. 아직 위험할 정도는 아니지만 곧 위험할 것 같다... (네 말에 귀를 손으로 문질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매번 들어도 네가 하는 칭찬에는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칭찬이라고는 인생에서 두 마디 들어본 것이 전부인데. 그것도 숨어서. 이렇게 대놓고 앞에서 들을줄은 예상조차 못했다.) ...싫다. 나도 나비가 부끄러워하는거 보고 있을거다. 나비는 내가 부끄러워하는거 전부 다 봤다. (머리칼을 끌어와 고개를 숙이는 너에 갸웃거리며 널 보려고 애쓴다.) 어, 어... 엉터리 아니다. 난 진짜로 안 아프니까 괜찮은거다... 다치면 아프니까 안되는거지만 난 아프지 않으니까 괜찮다.. 미, 미안. 하지만 나는... 나비 친구니까. 내가 나비 지켜줘야한다... 친구라면 그래도 된다. (고개를 돌려 툴툴거리는 너에 괜히 다급해져 이리저리 변명을 늘어놓다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응, 잘 할 것 같다. 나비는 나 많이 알려줬다. 아직 한국어 단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잘 알려주는거다. 나 병신..? 그런거라 잘 모르는데 나비가 잘 알려주니까 한국어 이만큼 한다. 집에 있는 스승님도 나비가 잘 알려주는거라고 했다. (언젠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했을 때 뱉던 단어를 따라 뱉었다.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몰랐지만 반의 아이들이 웃으면서 이야기한 것을 보면 그닥 엄청난 욕설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네게 진심어린 칭찬을 뱉었다.) 어드벤티지... 그래, 나한테 패널티다, 그거. 하지만 괜찮다. 나중에 내가 그만큼 더 크면 된다. (익숙한 단어에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수 있지. 나는 너보다 체격이 크니까. 하지만 그런 것 가지고 유치하게 노는게 묘미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했다.) 유치원생? 어린이를 부르는 다른 말인가? (그렇다면 그럴만 했다. 정말... 많이 유치하긴 했으니까. 의자에 올라가는 것도, 그것보다 더 크면 된다는 내 말도.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유치했다. 그래도 재미있는건 그 상대가 너이기 때문인걸까.) 노력할게. 내일도, 모레도 올 수 있게.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들이미는 얼굴에 입을 딱 다물었다.) ... ...아, 아닌데. 안 했다. ...하지만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못 온다.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올 수 있는게 아니라서 걱정했다. 그래서 그런거다. 나비랑 만나는건 좋으니까 못 볼 생각부터 하지 않는다.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12:02AM라비나:그게 부끄럽다는 건데.. 리인, 위험해질 것처럼 심장이 뛰어? 위험해질 만큼 심장이 뛰면 어떻게 되려나? 나 조금 궁금한데 더 칭찬해도 돼?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네게 다가가며 짓궃게 물어봤다. 예전에 반 친구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그 무뚝뚝하고 말 없던 차가운 그 치앙린이 지금 제 눈앞에서 내가 한 칭찬에 심장이 뛴다고 말한다. 옛날에는 이렇게 귀여운 사람일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참으로 사람은 오래 알고 봐야 한다 진작에 이런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말을 걸었을텐데! 괜히 더 아쉬웠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네가 부끄러워하는 거 안 봤지.. (잠시 멈칫하곤) ..아닌가? 봤으려나..? 아, 아무튼..! 보지마! (이런 내로남불이 어딨냐고 네가 따지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부끄러운 걸 어쩌겠나! 좋아하는 사람한테! 빨개진 얼굴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미 숙여진 고개가 절로 더 숙여졌다. 이러다 바닥에 얼굴을 박는 게 아닐까..) 안 다치겠다는 말을 한 번도 안 해주네. 에효.. 됐어. 네 유일한 친구로써 넘어가주지 뭐.. 난 앞으로 평생을 네가 더 더쳐서 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만 하다 죽겠네.. (시름시름 앓는 척을 하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사실 삐진 건 한참 전에 네가 자기는 나비 친구라는 말에서 풀렸지만 이젠 덜 다쳐오겠단 말을 조금도 하지 않은 것이 괘씸해 괜히 짓궃게 행동했다) ..장난이야. 너한테도 사정이 있겠지. 그래도 네가 다쳤을 때 여기가, 내 마음이 아프다는 건 변치 않을 거야. (짓궃게 행동하다 네가 더 사과할까 봐 늦기 전에 후딱 장난이라며 싱긋 웃었다) 정말? 너한테서 그런 칭찬 들으니까 엄청 기쁘다. (남들에게 듣는 칭찬보다 네게 듣는 칭찬이 내겐 더 뜻깊고 기뻐서 발그레해진 얼굴로 네 말을 듣다 갑작스러운 욕설에 놀라 눈이 크게 뜨여진다) 너,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내가 그런 건 안 가르쳐줬는데! 너 병..! 아니 그, 그 단어 아니야! 누가 그래! 넌 천재야 천재! 내가 허술하게 알려줘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데 어떻게.. 그.. 그 단어겠어! (대체 누가 네게 그런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은 건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반애들인가? 역시 반애들이겠다. 최대한 상스러운 말은 네 앞에서 하지 않은 이유가 다 있는 건데!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제 성미에 맞지 않아서 최대한 네 칭찬을 했다. 조금의 과장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네가 천재인 건 맞는 것 같았기에 거짓말은 조금도 섞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큼이나 크면 너무 커지는 건데. 딱 이 정도가 좋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의자 위에 올라서도 너한테 안 지지. (겨우 어드벤티지를 받아 이긴 유치한 싸움인데 네가 더 커버리면 그때의 나는 의자도 아닌 책상 위에 올라서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맞아.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애들. 우리가 방금 그렇게 놀았어. (어쩌면 유치원생이 봐도 더 유치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그 누가 자기가 더 감동받았다며 의자 위까지 올라가겠는가.. 조금은 체념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 위에서 폴짝 내려가려다 멈칫한다. 눈 앞에 더 편하게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이 보였기 때문이다) 린, 린. 나 여기서 내려주라. (팔을 뻗어 자길 여기서 내려달라고 네게 부탁한다. 한 번 어린애처럼 행동했기 때문일까. 이젠 작정하고 어린애처럼 굴 모양이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네 말에 순순히 수긍하며 들이밀었던 얼굴을 다시 제자리로 옮겼다) 너도 나랑 만나는 게 좋다니 다행이다. (살포시 웃으며 너를 바라봤다)

 

12:44AM张强林:이게 부끄러운건가? 그러면 난 지금 엄청나게... 부끄러운거다. ...위험해질 만큼 심장이 뛰면 위험하다. 나도 내가 무슨 짓 할지 모른다. 그거, 그... 心脏衰竭... 부, 부정맥..? 아무튼,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 (짖궂게 물어보는 너에 고개가 조금씩 숙여지고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더 칭찬해도 되냐는 네 말에 잠깐 멈칫하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무 행복하면 언제 불행이 닥쳐올지 몰랐다. 조심해서, 체하지 않을 만큼만 먹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말이 없어 벙어리였고 들어도 모르는 말이었기에 귀머거리였으며, 보아도 읽을 줄 몰라 장님이었던 예전을 바꾸어 준 것은 너였고, 너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홍복을 누린 일이었다. 그러니 조금 더 행복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치만 봤으니까 나도 본다. 나비 얼굴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는 자주 못오니까 볼 수 있을때 많이 봐 둬야 한다. 그래야 생각할때 나비가 표정이 많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어쩔 수 없었다. 진심이었는걸. 점점 더 내려가는 네 얼굴에 손을 뻗어 네 이마를 턱, 하고 대어주었다. 이러다가 이마가 바닥을 뚫고 내려가겠어.) ...그건, 불가능. 덜 다치는건... 운. 그러니까, 노력. ...나비는 나 걱정한다. 그건... 좀 기분 좋다. 하지만 나비 안 죽는다. 나비는 신선 되서 천년 살아야한다... 죽는건 아프다. 사는게 좋다. (200%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정말이지, 난 차라리 지옥도가 펼쳐지더라도 이승이 나았다. 사는건 중요했다. 살아야, 너를 볼 수 있었으니까. 내가 너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이상 나는 꼭 살아야만 했다.) 사정, 지금은... 말 못해준다. 미안. 말 하다가 마는게 안된다고 했는데 말 못해준다. ...아프면 안되니까 덜 다치게 노력하겠다. 나 노력하는거 잘 한다. 그거 말고는 잘 하는거 기다려 있다. 이거 두 개 말고는 잘 못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 칭찬... 나는 칭찬 잘 못해서... 기분 좋으면 많이 한다. (어쩌면 이것도 노력으로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나에게 매일 해주는 것이 칭찬이니 금세 배울지도 모른다. 네가 기뻐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꽤나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심장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이, 네 앞에만 서면 언제나 내 심장은 고장이 났다. 아버지 앞에서도 잘만 조절하던 심박수인데, 네가 옆에 있으면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도 심장이 쿵, 쿵 하고 뛰어댔다.) ...나쁜 말인가? 미안. 전에 아버지께서 말 했다. 내 소개할때, 나 보면서. 그리고 다들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나쁜 말 아닌 줄 알았다. ...처, 천재는 아니다... 내가 천재일리가 없는데... 그냥, 나비가 잘 알려주는거다. (천재야 천재! 하고 와다닥 말을 뱉는 너에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열심히 사과했다. 나비 앞에서는 나쁜 말을 쓰고싶지 않았다. 게다가, 천재라니. 가당치도 않았으므로.) ...확실히... 그건 너무 크다. 아마 문을 왔다갔다 할 때마다 고개 숙여야 한다. 그러니까 이만큼만 크겠다. 나비는... 지금이 딱 좋다. 귀엽다. 더 크면... 나중에 의자 올라가면 너무 커질지도 모른다. (이만큼, 하며 손바닥을 제 머리에 댔다. 지금 키 정도면 나쁘지 않지. 물론 어렸을적 조금 더 유복하게 자랐더라면 더 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도 유복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었다.) 유치원생... 하지만 이렇게 놀아도 재밌다. 그러니까 좋다. 나 유치원생 해도 된다. 잘 놀 수 있다. (기가막힌 삼단논법이었지만... 뭐, 말 하는 꼬라지만 보아선 유치원생보다 문법이고 회화고 전부 꽝이었으므로 어쩌면 정말 유치원에 가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고 생각하다 제 눈 앞에 뻗어진 팔을 보고 널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제 팔을 마주 벌렸다. 꼭 마주 안으라고 하는 것 같은 행동. 네가 마주 안는다면 그대로 허벅지를 받쳐주거나, 흔히들 말하는 공주님 안기같은걸 해서 내려줄 생각이다. 저렇게 가벼운 나비를 들지 못한다는 예측에 없었다. 그동안 잘만 안아왔는걸.)

 

1:10PM라비나:얼굴이 너무 뜨겁고 심장이 막 쿵, 쿵 뛰어서 내 심장 소리가 상대한테까지 들릴까 하는 걱정되고 지금 내가 제대로 얘기하는 게 맞나 싶어질 정도로 정신이 어질어질한 기분이라면.. 그게 부끄러운 거야.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는 것처럼 설명해주었다. 어쩐지 미래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선생님이 된다면 그것은 아마 네 덕분일 것 같다. 이렇게 아이를 대하는 요령을 네게 얻게 될 줄이야) 에이, 부정맥까지는 무리일걸? (도리질 치는 네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 린은 너무 귀여워! 칭찬 듣는 게 그렇게 부끄러웠어? 알았어, 안 할게. (해주고픈 칭찬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네 상태를 보니 오늘은 여기서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입 모양으로만 린 멋있어 라 말하곤 방긋 웃었다) ..보지 말라면 좀 보지 말지. (제 이마를 턱, 하고 대주는 손길이 느껴졌고 네 손과 맞닿은 부분이 유독 뜨거웠다. 낭만은 잘 모른다던 주제에 내 로망은 잘 아는가 보다. 한숨을 푹 내쉬며 잘 익은 토마토 같은 얼굴을 들어 올렸다. 부끄러워도 티가 잘 안 나는 얼굴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하게도 제 얼굴은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옅게 붉어지는 사람이었으므로 지금 제 얼굴이 얼마나 붉어졌을지는 상상이 갔다) ..이제 만족하냐 요 고집쟁이야. (괜히 너를 밉지 않게 흘겨보며 네게 툴툴거렸다) ..그게 뭐야. (내 걱정이 기분 좋다는 말에 눈이 커졌다가 신선이 되어 천년 살아야 한다는 네 말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 뾰로통했던 얼굴을 유지 못 하고 그만 웃어버렸다. 저러는데 어떻게 더 토라진 척을 하겠는가) 내가 신선이 돼서 천년 살게 되면, 너도 천년 살아야 해. 나 혼자선 외롭잖아. 난 외로운 건 딱 질색이란 말이야. (웃음을 갈무리하고 퍽 진지하게 말을 하다 싱긋 웃었다. 말 그대로 나는 외로운 것이 너무나 싫었으므로 내가 만약 천년을 살게 되면 내 곁에는 천년을 사는 네가 있었으면 했다) 괜찮아. 말 못 하는 사정은 누구한테나 있으니까. 나 이런 거로 섭섭해하는 사람 아니야. 응, 응. 노력하려는 모습이 아주 기특해요. 린 어린이~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하다 정말 꼬마아이를 대하듯 말했다. 그리곤 미소 지으며 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쓰다담~ 생각보다 좋은 촉감에 한 번만 쓰다듬을 생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더 쓰다듬다가 겨우 손을 거두었다) ..아니야, 너 천재 맞아. 내가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데 그게 어떻게 천재가 아니야! (아버지. 너를 그런 식으로 소개한 사람이 네 아버지라는 말이 귀에 박히자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빠르게 미소를 얼굴 위에 띄웠다. 네 상처가 아물지 않는 이유도 그 아버지한테 있는 걸까? 자기 아들한테 그딴 말을 내뱉은 사람이 폭력이라고 안 하겠어? 무수한 상념이 몰려왔지만,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함부로 남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고 언젠가 네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네? 이만큼이나 크면 문을 지나다닐 때 고개를 숙이면서 지나가야겠구나. 예의 발라 보이고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너 자꾸 나한테 귀엽다 할래? 내가 착각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참. (고개를 숙이며 문을 지나다니는 네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또 귀엽다는 네 말에 멈칫하곤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발상의 전환인데? 하지만 나름 논리적이네. (엄청난 삼단논법! 그래도 나름의 논리가 있는 발언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름 맞는 말이다. 유치원생처럼 놀아도 재밌으니 유치원생을 해도 된다니. 말을 배배 꼬고 삐뚜름하게만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린과 말싸움을 하라고 하면 분명 네가 이길 것이다. 이건 확실해) ..어? 안아주게? (팔을 마주 벌리는 네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네 의도를 읽고 조금 놀라며 말했다. 이러고 있으면 그냥 덜렁 들어서 아래로 내려주겠거니 하고 팔을 벌린 것이었는데 안아주겠다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나 무거우니까 미리 팔에 힘주고 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얍, 하는 작은 기합 소리와 함께 폴짝하고 조금의 도움닫기를 하며 네 품에 포옥 안겨 네 목을 껴안는다. 이미 몇 번 안긴 경험이 있지만, 안길 때마다 기분이 새로웠다. 의자에서 내려주려고 안아주는 건 너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은 팔을 뻗어 치앙린의 목을 껴안습니다.

 

그때, 당신의 눈 앞이 핑글 도네요.

 

현기증이라도 느낀 것 처럼,

 

눈 앞이 새하얗게 점멸됩니다.

 

.

 

.

 

.

 

햇빛은 여전히 뜨겁다.

 

그 아래를 걷고 있는 우리의 얼굴에 땀이 맺힌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분명 너는 이렇게 나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올해의 여름에도 나의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너는 어째서,

 

...

 

...

 

눈을 깜빡이는 순간,

 

풍경이 뒤바뀝니다.

 

라비나가 있는 곳은 집 앞.

 

여전히 푸른 하늘에 아무렇지 않게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요란한 매미소리와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줄지어 선 가로수의 잎들.

 

평화롭게 흘러가는 여름의 풍경입니다.

 

...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요?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면 벤치와 버스노선표가 보이네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버스의 엔진소리가 귓속을 파고듭니다.

 

예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언젠가, 자신도 버스를 타보겠다며 당신을 따라나선 치앙린이 눈 앞에 보입니다.

 

그동안 꽤 먼 거리를 걸어다니기만 했다는 걸 알게되는 날이었죠.

 

교통카드를 대기 전 다인승이라고 이야기하는 당신의 목소리,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의자를 당신에게 양보해주던 그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버스의 덜컹거림마저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더랍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창문의 바람.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

 

버스가 덜컹거리고,

 

기계적인 안내음 넘어,

 

그가 아주 작게, 신경쓰지 않았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작은 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의 바람 때문에 머리칼이 휘날렸기에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너는.

 

그때의 너는 그 어느 때보다 기쁘게 미소짓고 있었겠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

 

그랬을거다.

 

...

 

꽃향기와 같은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옆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나는...

 

...

 

...

 

덜컹거리는 충격에 당신은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당신은 어느새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시야에 가득하던,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창밖으로 비칩니다.

 

버스를 탄 기억은 없습니다.

 

기이한 꿈,

 

아니.

 

기억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3:26PM라비나: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주변을 둘러보아도 별 다를 것은 없습니다.

 

잠시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당신이 내려야 할 정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이번 정거장은ㅡ 　　

 

기억속의 안내음과 같은 목소리.

 

그리운 시선만이 부재할 뿐이었습니다.

 

...

 

버스에서 내리면 벤치와 노선표가 있는 작은 정거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의 집 앞 정거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정거장의 앞에는,

 

작은 문방구가 하나 눈에 띄는 것 외에는 전부 평범합니다.

 

슬슬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도로는 달아올라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제멋대로 일렁거리는 공기의 흐름.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왜곡된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때도 그와 이런 풍경을 보았습니다.

 

단축수업으로 일찍 학교를 나선 그 날.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다며 웬일인지 당신을 조르던 그에,

 

당신과 그는 이 풍경을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일 년 전의 해는 여전히 열기를 과시하고 있었고,

 

일렁이는 아지랑이는 눈앞이 온통 하얘질 만큼 아찔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열사병이고 탈진이고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거라는 그의 손의 언어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

 

...

 

누군가 당신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듭니다.

 

하얗게 변해가던 시야 한가득 그 손짓이 담깁니다.

 

치앙린의 손입니다.

 

3:34PM张强林:...많이 더워?

 

어쩌면 걱정스러운 것 같은 얼굴을 하며, 걔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현기증이 일었던 것 같아요.

 

3:35PM라비나:어.. 어엄청 많이.. 더워... (손을 부채마냥 팔랑거린다)

 

3:36PM张强林:그럼... 아이스크림. 사줄 수 있다. 나 어제 돈 조금 받아왔다. (문방구 앞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가리킨다...)

 

3:37PM라비나:아이스크림! 좋아! (한층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근데 사줘도 내가 사줄 건데!

 

3:37PM张强林:나는 별로 안 덥다. 그러니까 안 먹어도 된다. 나 사줄 필요 없다.

 

3:38PM라비나:나 혼자 먹고 있으면 삥 뜯은 것 같아서 그러니까 사준다 했을 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네 등을 토닥인다)

 

3:40PM张强林:...하지만 남의 돈 쓰는건 안 좋은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나비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안 좋은 일일지도..) 나 아이스크림 안 먹어봐서 잘 모른다. 그러니까 나비가 골라줘야한다.

 

3:44PM라비나:맞는 말이긴 한데, 그건 남이 원하지 않을 때를 말하는 거고 그 남이 먼저 돈을 쓰겠다고 하면 좋은 거야. (그리고 나 부자야 부자 어제 용돈 받았어! 라고 말하며 방긋 웃었다) ..뭐!? 아이스크림을 안 먹어 봤다고!?? 애가 인생을 아주 삭막하게만 살았네! 일로와봐. 내가 진짜 맛있는 아이스크림으로 골라 사줄게. (급하게 린의 손을 잡고 문방구 앞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린을 끌고 간다)

 

3:47PM张强林:(좋은거... 역시 나비는 좋은 사람이라는 단편적이고 지극히 참일뿐인 결론만을 도출해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라는... 말에는 동의해주기 어려웠지만. 아무리 자신의 자본이 가끔씩 만원을 받는 정도로 그치는 사람이거니 하지만 꽤나 경제 개념은 잘 잡혀 있었다. 학생이 받아봐야 얼마나 받는다고.) 삭막... 하긴 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먹어볼 수 있으니까 기억하면 된다.

 

그래, 언젠가 맡아보았던 양귀비의 향이 느껴집니다.

 

3:50PM라비나:기억할 필요가 뭐 있어 앞으로 내가 그동안 린이 못 먹어본 아이스크림을 다 사줄 건데. 잠시만 기다려!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문을 도로록, 열고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비비빅)을 하나 꺼내놓고 너를 휙 돌아본다) 무슨 아이스크.. 아, 안 먹어봤댔지. 음.. 좋아하는 맛이라도 있어?

 

3:53PM张强林:전부 다... 먹으면 아프다고 했다. 많이 먹으면 안된다. (비비빅 가져가는 너 보고 이름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맛, 잘 모른다. 주면 그냥 먹었다. 잘 못 느끼니까 나비가 좋아하는거 주면 좋겠다.

 

3:57PM라비나:으응? 아파? ..아, 차가운 거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고? 여름에는 더우니까 괜찮아~ 게다가 딱 하나만 먹는 건데 배탈 나면 그 먹은 사람이 너무 허약한 거야. (손을 휘적거리며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가볍게 얘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이거 좀 호불호가 갈리는데.. 괜찮아? (저번에도 한 봉지 가득 비비빅을 사 들고 집에 들어갔다가 엄마한테 두들겨 맞은 기억이 있었기에 선뜻 네 몫의 비비빅을 꺼내지 못한다)

 

4:03PM张强林:(더우니까 괜찮나? 흠터레스팅... 하는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그럴 수 있지, 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자신은 뱃속에 얼음이 들어차도 멀쩡할테니 네가 괜찮다면 괜찮은게 맞았다.) 호불호 상관 없다. 다 잘 먹는다.

 

4:06PM라비나:후회하면 안 된다? 난 분명히 말했어! 호불호 엄청 갈린다고! (어쩌면 민트초코보다 더 미움받는 아이스크림은 이 비비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에 계속해서 너에게 경고를 하다 결국 아이스크림 냉장고 아래쪽에 있어 제일 시원하고 단단한 비비빅을 꺼내 너에게 짜잔- 하고 보여준다) 자 그럼 계산을 해봅시다~ (양손에 비비빅을 하나씩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4:10PM张强林:후회 안 한다. 나비가 주는거 나는 안 싫어한다. (당연했다. 네가 주는 모든 것은 나에게 황제가 내린 홍복이었으며, 그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천억금을 주어도 아까울 물건이었다.) 하나는 나 줘야한다. 내가 사주기로 했다.

 

4:14PM라비나:그렇게나 날 믿어주는 건 좋은데.. (그래도 나름 네 첫 번째 아이스크림인데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망설여졌다. 그래 뭐 내가 좋아하니 너도 좋아하겠지!) ..그냥 두 개 다 내가 사주면 안 돼?

 

4:16PM张强林:맞다. 난 나비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 나비가 준 것들은 다 좋아했으니까 이번에도 다를 건 없다. (고개 끄덕였고...) 두 개 다 나비가 사면 나비 돈 없는데... (아이스크림 두 개 샀다고 거지가 될 라비나가 아니었지만 당연히 치앙린은 몰랐다. 자신은 정말 아이스크림 두 개 사면 돈이 바닥나는 사람이니까...)

 

4:21PM라비나: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래! (믿는다는 말에 괜히 부끄러워져서 틱틱댔다) 나 이런 아이스크림 두 개 산다고 그지깽깽이되는 그런 사람 아냐. 친구한테 아이스크림 열 개는 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다 산다- 통보식으로 네게 말하곤 계산하기 위해 문방구 안쪽으로 향했다)

 

4:24PM张强林:나비 나쁜 사람 아니다. 좋은 사람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그러니까 안 위험하다. (굳건하게... 말했다. 네가 부끄러워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열 개..? 그러면 돈 빌려야 한다... 열 개 사면 거지 되는데. 안되는데... (주머니에 있는 이천 삼백 원이 잘 느껴졌다. 심부름하고 남은 돈... 나비를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상념이 끝나 고개를 들어보면 너는 어느새 저 멀리에 있었다....)

 

4:31PM라비나:윽, 으으.. (굳건하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 말하는 너에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애가 대낮부터 남사스러운 말을 참 잘도 하네..! (참고 참다 고개를 홱 돌리며 말한다) 아이 거지 안 된다니까! 나는 지금 그렇게 사고도 돈이 남는다고! (어제 용돈을 받아 나름 두둑한 지갑을 생각해본다. 분명 아이스크림을 열 개나 사면 좀.. 홀쭉해지긴 하겠다만 지금은 꼴랑 두 개니까! 괜찮을 거다) 이거 두 개 얼마여요~ (너를 덜렁 밖에다 두고 호다닥 계산대로 가 계산을 해버린다)

 

4:33PM张强林:남사스러운..? (갸웃..) 아무튼 나비는 착한 사람이다. 아, 나비... 잠깐만... (자기를 밖에다 덜렁 두고 계산대로 가버리는 너에 급하게 널 쫓아갔다. 그래도 돈이라도 보태야하는데... 라는 마음가짐으로...)

 

 

4:35PM할아버지: 아이고 학생 둘이서 왔는갑네. 비비빅 두 개 해서 이천원이여.

 

4:37PM라비나:아유 싸기도 해라. 여기요! (쫓아오는 네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해져 누구보다 빠르게 지갑에서 이천원을 꺼내 할아버지에게 드린다) 여름이니까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게 많이 파세요! (예의 바른 젊은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멘트도 잊지 않는다)

 

 

4:37PM할아버지: 학생이 싹싹하구먼. 학생도 더위 조심해서 가!

 

할아버지의 걱정어린 멘트는 덤입니다.

 

4:38PM라비나:짜잔, 시원한 아이스크림~ (빠르게 계산한 비비빅 하나를 네게 건네준다)

 

4:39PM张强林:...감사합니다... (가볍게 목례를 하며 비비빅 하나를 받아들고 껍네기를 깠다. 결국 사주지는 못했지만 웃고 있는걸 보면 그닥 나쁘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달다. 맛있다. 시원해.

 

4:43PM라비나:오냐, 맛있게 먹어라. (퍽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말한다) 정말!? 맛있어!? 진짜!!? (살면서 처음 자신을 제외한 비비빅 선호자 만난 거라 굉장히 신났다) 정말 좋아해 줄 줄이야~ 이 정도면 우리 정말 천생연분 아닌가? (신나게 비비빅 껍데기를 까 입에 물며 말했다)

 

4:45PM张强林:(고개 끄덕끄덕) 맛있다. 엄청 어렸을 때 먹었던 얼음... 그거랑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시원하다. 이제 안 덥다. (옛날에 먹었던 것들은 다 녹아버린 팥빙수였지만 그것보다야 꽝꽝 얼어붙은 비비빅이 훨씬 더 맛있을 게 분명했다.) 천생연분? (곰곰..) 맞다. 천생연분. 나는 나비가 좋아하는거 다 좋아한다.

 

4:49PM라비나:다행이다! 나는 네가 싫어할까 봐 엄청 긴장하고 있었는데 맛있다니 진짜 다행이야. (무사히 네 첫 아이스크림을 골라준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린은 말도 이쁘게만 하네. 다음에는 또 뭘 해줘야 하려나. (이렇게 도장 깨기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네게 알려주고 선물해 줄 작정이다)

 

4:55PM张强林:긴장할 필요 없다. 나는 나비가 주는거 다 좋아하니까. 나는 싫어하는거 없다. 뭐... 해줄 필요 없는데. 지금도 많다. 내 가방 꽉 찼다. (네 말에 다급하게 어, 어어 하면서 말을 쏟아냈다. 정말로 네가 해준 모든 것들은 마음이고 가방에 전부 남아있었으니까...)

 

4:55PM라비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라.

 

치앙린이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이건 그의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일 텐데.

 

당신의 기억 속 치앙린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샌가 길이 갈리는 갈림길입니다.

 

이쯤에서 치앙린과 헤어져야겠죠.

 

 

내일도 만나자! 꼭 와야한다?! 　　

 

 

...노력, 한다. 　　

 

그렇게 서로에게 안녕을 바라는 인사를 하고 돌아선 순간.

 

당신은 또다시 현기증을 느낍니다.

 

...

 

그래, 그 해의 여름에는 빈혈이 유독 잦았다.

 

타는 것 같은 목과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시야.

 

그리고, 언젠가 맡아보았던 양귀비의 향이 느껴집니다.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습니다.

 

 

...나비? 　　

 

뒤를 돌아보고 손을 들어 인사하던 그가 다가옵니다.

 

고개를 갸웃하고 미간을 찌푸린 치앙린의 모습과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

 

"ㅡ생?"

 

"학생!"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선선한 문방구 안입니다.

 

나이 지긋하신 문방구 주인 할아버지께서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갑니다.

 

 

4:59PM할아버지: 어린데 이 더운 날 바깥에서 그렇게 서 있으니 쓰러지지.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집어 와라. 이 쇤네가 사줄터이니.

 

5:04PM라비나:..네, 네? 아이스크림이요? (할아버지의 말에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본다) 제가 쓰러졌었어요?

 

 

5:06PM할아버지: 그래. 아까 버스에서 내려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픽, 쓰러지더만. 다들 놀랬을게야. 그러니까 퍼뜩 일어나서 아이스크림이나 가져 와. 시원한거나 먹고 정신을 차려야지.

 

5:09PM라비나:(내가 쓰러졌다고? 고개를 갸웃한다. 최근 몸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을 조금 느끼긴 했어도 그 정도로 쇠약해졌을 줄은 몰랐다. 상념에 빠지려 할 즈음 아이스크림을 가져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에 얼떨결한 기분으로 비비빅을 하나 골라온다. 가장 꽝꽝 얼어있는 비비빅으로 잘 골라왔다. 옆에 린이 있었다면 이건 린의 몫이었을 텐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신은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입에 물었습니다.

 

어쩌다 쓰러졌더라.

 

경위조차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저, 익숙한 얼굴의 할아버지께서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더위라도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미 죽은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 기억이 그렇게나 생생한 것도.

 

더워서 헛것을 보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전부 다 여름이 너무 더운 탓일거다.

 

...분명히.

 

...

 

익숙한 일방통행 도로를 걷다보면 작은 주택 하나가 보입니다.

 

그의 말대로, 문은 열려있었습니다.

 

집의 현관문 옆, 우체통에는 여러가지 우편물과 꽃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흰 국화를 보고 있자니, 그 사이에서 흰색 우미인화 하나가 눈에 띕니다.

 

그래요, 분명 이 꽃을 좋아했을 텐데.

 

언젠가 그가 제 입으로 이 꽃을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조금은 자조적일지 몰라도 그가 좋다고 말한 유일한 것이지 않습니까.

 

...

 

...

 

 

양귀비는 역시 별로다. 　　

 

툭 던지듯이 치앙린이 말했습니다.

 

이상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점심시간의 옥상이었습니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서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걔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거립니다.

 

어디에선가, 익숙한 꽃 향기가 납니다.

 

그렇게 둘은 우리만의 점심시간을 즐깁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말이죠.

 

함께 밥을 먹고, 운동장을 산책하고, 교실에 올라가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그렇게 얼마 있자,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결국 다시 하늘을 보겠다며 옥상까지 올라간 둘이 교실로 내려가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이 치앙린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바라본 순간.

 

툭, 툭. 붉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고,

 

바닥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치앙린이 미간을 찡그립니다.

 

5:21PM张强林:...또, 너무 더우면 이런 것 같다. 난 별로 덥지 않은 것 같은데. 나비도 조심해라.

 

5:23PM라비나:어떻게 덥다고 피가 나. 어디 다쳤어? 무슨 일이야? 아파? 왜 다쳤는데. (떨어지는 붉언 액체를 보자 놀라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네가 걱정되는 마음에 재빨리 네게 다가가 너를 살핀다)

 

5:24PM张强林:안 다쳤다. 그냥, 요즘에 계속 이러고 있다. 큰 일은 아니다.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으니까 괜찮다. (핏기가 가신 네 얼굴에 코 아래를 훔치고 너를 걱정했다.)

 

5:27PM라비나:아니야, 내가 안 괜찮아. 보건실에 가자. 아, 화장실부터 들러야 하나? 아니야 역시 보건실에.. (괜찮다는 네 말을 믿지 않았기에 네 팔을 잡고 어디부터 가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보건실이 있는 쪽으로 너를 이끈다)

 

5:28PM张强林:아니야, 정말 괜찮다. 조금 있으면 멎을테니까 교실로 가야한다. 종도 쳤다. (보건실이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너에 드물게 반대를 표하며 교실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야, 정말로 코의 내상은 금세 나을 것이 분명했다. 교실로 들어가기도 전에 멈출것이 분명했으니.)

 

그렇게 말한 치앙린은 여전히 무표정이지만, 조금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합니다.

 

...

 

꽃을 닮은 웃음이었다.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향기로운 웃음.

 

금방이라도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웃음.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아,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

 

...

 

당신은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어느새 방 안까지 들어왔더라.

 

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바닥은 그의 집 안입니다.

 

방 안의 방.

 

이 집에서 가장 작은 방 앞에,

 

당신은 서있습니다.

 

5:32PM라비나:

SAN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문 손잡이를 쥐고 잠시 머뭇거린다. 정말 들어가도 될까. 하지만, 네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머뭇거리던 손이 저절로 문 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어 처음으로 안을 들여다 본 방 안은,

 

단출하기 그지없습니다.

 

작은 침대 하나.

 

그가 누우면 빈틈없이 메워질 침대 하나 위에,

 

철로 된 향로 하나, 그의 혼과 육신이었을 것이 담긴 병 하나.

 

그리고 그가 지금가지 써 오던 가방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5:50PM라비나:(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병을 제 눈에 담는다. 홀린 사람처럼 다가가 나보다 한참이나 작아진 네가 담겨있을 병을 바라봤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네가 죽었다니. 말도 안 됐다. 내가 아프면 제 마음이 아프다 했던 네가 나만 남겨두고 먼저 떠날 줄은 몰랐다. 내일도 모레도 매일 나와 만나겠다 약속했는데. 약속을 어기면 혼을 내주겠다고 말했는데. 이러면 혼내기는커녕 눈물만 흘리게 될 것 아닌가. 병을 한 번 쓸어본다. 따스했던 네 손과는 다르게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진다)

..린, 나 왔어. 빨리 오려고 했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 그동안 혼자였을 텐데. 많이 외로웠겠다. 미안해. 하지만, 앞으로는.. 자주 널 만나러 올게. 혼도 내줘야 하고.. 나랑 저번에 약속했잖아. 네가 약속을 안 지키면 내가 혼내겠다고. 근데 혼낼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 지금도 봐. 혼내기는 커녕 이렇게 허공에다 얘기하기나 하고. 그래도 다 듣고는 있지? 그러면 됐어. 듣기라도 해. (침대에 기대어 앉아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이 쌓였던 탓일까. 말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말을 하다 보니 눈앞이 점점 흐려져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벌써 울면 우느라 기운을 다 써버릴 것 같기에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아, 맞다. 나 너한테 줄 편지도 써왔다? 나중에 내가 나간 뒤에 읽어봐.

 

납골당에도 안치되지 못한 채,

 

여전히 자신의 집 아래 가장 좁은 방에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고 이야기합니다.

 

그가 겪었던 인생의 비극이 이 곳에 가루가 되어 내려앉아 있습니다.

 

그의 열린 가방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쪽지 두 장이 있을 뿐입니다.

 

5:53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이 주었던 모든 것 사이에 끼어있는 사진 하나가 눈에 띕니다.

 

비가 오는 바다의 사진.

 

그는 죽고 난 뒤, 언제나 물과 함께였습니다.

 

그가 비를 좋아했던가요.

 

아니면 싫어했던가...

 

하지만, 물 속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납니다.

 

사진에서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지면을, 수면을 두드리는 물의 소리가...

 

...

 

...

 

그날도 빗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와 발치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여름이라면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러운 소나기였습니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가만히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뒤편에서 누군가 당신의 옷을 끌어당깁니다.

 

뒤를 돌아보면 그 아이가. 치앙린이 서 있습니다.

 

우산 하나를 당신에게 내밀고서 어서 받지 않겠냐고 손으로 묻고 있어요.

 

5:59PM라비나:우산 가져왔네?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아, 같이 쓰자고? (고개를 갸웃하고 우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너를 본다)

 

6:02PM张强林:(고개를 저었다. 쏟아지는 물에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까, 입을 크게 벌려 말했다.) 나비, 쓰라고. 나는 이미 젖어서, 그냥 가도 괜찮아. (네가 우산 없이 학교 현관에 서 있는걸 보고 우산을 사 왔다. 그러니 젖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6:05PM라비나:..어? 그러게? 뭐야, 너 왜 젖어있어! (물에 젖은 네 모습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가방을 뒤적인다. 잘 하면 등교할 때 교문 앞에서 받은 휴지 정도는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찾았다! 우선 이걸로라도 물기 좀 닦을래? 아니면 내 체육복이라도 줄까? (분명 여기에 있을 텐데.. 중얼거리며 체육복을 찾기 시작한다)

 

6:08PM张强林:괜, 찮아. 앞에 갔다와서 젖었다. 나비 우산 안 쓰면 감기 걸린다. (네가 주는 휴지를 머뭇거리면서 받았다. 물기를 조금씩 닦아내고 젖은 옷의 수분을 쭉 짜내며 네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걸어가는 동안 젖을 체육복이었다. 제대로 빨아서 줄 수도 없으니 받지 않는 편이 좋을테였다.)

 

6:12PM라비나:아니, 비가 오는데 왜 나간 거야..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그리고 린, 지금은 내 걱정보단 네 걱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음.. 역시 내 체육복은 너에게 작으려나.. 위에 걸치는 것도 안 될까? 많이 추울 것 같은데. (휴지 몇 장을 꺼내어 네 물기를 닦아내는 것을 거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감기에 걸릴 것이 분명했다)

 

6:14PM张强林:나비, 우산 없다. 비 맞으면 안되니까 우산 가져왔다. (우산 네 손에 쥐어주었다...) 춥지 않다. 비, 좋아하니까 가끔 맞으면서 돌아갈 때도 있다. 이번에도 그러면 된다. ... ...걱정되면 저기 앞 까지만 우산... 같이 쓰면 된다. (저 멀리 있는 갈림길을 가리켰다)

 

6:19PM라비나:나 때문에 그런 거야? (손에 쥐어진 우산을 빤히 바라봤다. 네가 나를 위해 가져왔다, 생각하니 네 다정함에 가슴께가 간질거림과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좋아! (비를 맞으며 돌아가겠다는 네 말에 걱정되는 마음이 커 눈매가 추욱 쳐진다. 하지만 곧 우산을 같이 써도 된다는 네 말에 얼굴이 화악 밝아지며 밝게 웃었다) 아무리 비를 좋아한다 해도 너무 오래 맞고 있으면 안 돼.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또 너는 학교에 못 올 거고, 난 또 혼자 있겠지.

 

6:22PM张强林:(고개를 끄덕였다. 너를 위해서 가져온 것이 맞았으니까. 오랜만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 산 것임에도 불구하고 썩 마음에 들었다. 아버지나 스승님이 쓰시는 것 만큼 크고 단단한 우산은 아닐지 몰라도.) 괜찮다. 난 튼튼해서 감기 안 걸린다. 아직까지 안 걸려본 것 같다.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아, 나는 아프다고 학교 안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혼자 있지 않는다...

 

6:28PM라비나:..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네가 돈이 어딨다고! 게다가 물에 쫄딱 젖으면 어떡해, 정말! (미안한 마음에 괜히 너에게 툴툴거렸다) ..그래도 내 생각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뽀송하게 집에 갈 수 있겠다. (네게 미안했지만, 나를 위하는 네 마음이 고맙고 다정해서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치. 네가 튼튼하기는 하지. (눈 앞에 건장한 너를 보면 뭔가.. 감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그랬다) 그럼.. 이제 갈까? (우산을 팡, 하고 펼치고는 널 바라보며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치앙린에, 그렇게 둘은 함께 우산을 쓰고 걷습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발을 디딜 때마다 들리는 찰박이는 소리.

 

가까운 거리에 간간히 스치는 팔.

 

꽃향기가 코 끝을 스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향입니다.

 

그 향기가 주변 공기를 꽉 채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6:31PM라비나:

건강

기준치:	65/32/13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라비나는 빗속을 걸어가다,

 

현기증이 이는 것을 느낍니다.

 

무언가 흐르는 느낌에 코 밑으로 손을 대어보니 코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을, 치앙린은 놀란 눈으로 바라봅니다.

 

나비, 하고 급하게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지면을 때리는 빗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신은 여전히 그의 방 가운데 있습니다.

 

천장이 낮아 까치발을 하면 머리가 닿을 것 같은 방에서,

 

당신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입니다.

 

손에는 편지 대신 그의 가방에 있던 쪽지가 들려 있습니다.

 

6:35PM라비나:

자료조사

기준치:	55/27/11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直道相思了无益，未妨惆怅是清狂。 　　

 

 

상사의 아픔은 전혀 이로울 것 없다 말하지만, 사랑에 미쳤다 해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相见时难别亦难，东风无力百花残。 　　

 

 

春蚕到死丝方尽，蜡炬成灰泪始干。 　　

 

 

만나기 어렵더니 헤어지기는 더 어렵고 봄바람마저 힘을 잃어 온갖 꽃이 지는구나. 　　

 

 

봄철 누에는 죽어서야 실이 다하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마른다. 　　

 

시 구절이,

 

친절하게 해석까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있습니다.

 

어쩐지 이 모든것을,

 

이전에도 한 번 즈음 겪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닫힌 문 앞에 서서 쪽지를 들고ㅡ

 

어딘가로 가버린 그를 기다리는 당신.

 

이번에도,

 

모든 것이 남아있습니다.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무심결에 향로 밑을 더듬어 보면,

 

 

我喜欢你。 　　

 

꿈에서 보았던 네 글자.

 

6:49PM라비나:..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 (쪽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방 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네가 지냈을 방. 지금 내게도 비좁게 느껴지는 이 작은 방에서 너는 지금까지 지내왔을 터였다. 너의 그 사정이 무엇이었길래 이 비좁은 방에서 아물지 않는 상처를 지니며 살아왔던 걸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미리 물어보는 건데. 하지만 너는 물어보더라도 말하려 하지 않을 것 같다. 뭐가 그리 어려운지 제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린. 나한텐 한없이 다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돌볼 줄 모르던 린. 나를 보며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는듯한 미소를 짓던 네가. 지금 그런 네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오늘은, 이만 가볼게. 나중에.. 나중에 또 올 테니까 너무 기다리고 있지는 마.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너무.. 외롭고 슬프잖아. (문을 열기 전 네게 또 한 번 말을 걸었다. 너는 기다리는 것을 잘한다고 했는데 나는 네가 기다리지 않았으면 했다)

 

꽃.

 

그러고 보니, 결국 그에게는 위로의, 추모의 꽃 한 송이조차 없었습니다.

 

장례식, 형식적이더라도 오가는 사람들의 안부 인사.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당신의 눈 앞의 아이에게는,

 

이제는 당신보다 어려진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저 멀리서,

 

혹은 방 안에 채워져 있던 향의 내음과 섞인 꽃의 향기가.

 

 

누나, 난 괜찮으니까, 기다릴게. 그러니까, 조금만 더 나중에 다시 만나자. 　　

 

당신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나온 집 밖은,

 

올려다 본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합니다.

 

언젠가 그가 걸었던 길은,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더위가 한 꺼풀 식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흐르는 뭉게구름과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익숙한 풍경입니다.

 

꼭 오늘처럼 깨끗한 하늘이 인상적이었죠.

 

그 풍경 속에는,

 

그 아이도,

 

치앙린도 있었습니다.

 

그리운 향이 나는 그 풍경 속에...

 

...

 

...

 

방과 후, 교실. 활짝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붉은 하늘.

 

흔들리는 커튼과 함께 일렁이는 햇빛.

 

뒷문으로 막 교실에 들어선 당신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었습니다.

 

치앙린이 죽기 일주일 전이었나요.

 

그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묶인 머리가 상처 많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긴 속눈썹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어디가 불편한지 계속 뒤척이며 잠을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은,

 

거의 잠을 자지 않는 그의 꽤나 희귀한 광경입니다.

 

그가 몸으로 덮고 있는 책상 위에는, 노트가 한 권 펼쳐져 있습니다.

 

7:00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난잡한 글씨가 이리저리 적혀있습니다.

 

7:02PM라비나:

교육

기준치:	70/35/14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花, 瓶子... 掌握? 　　

 

간단한 한자들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꽃, 병... 스승, 같은.

 

7:04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노트 끄트머리에는 어디에선가 구해온 신문을 끼워두었습니다.

 

이후는 잘려 있어 내용을 알 수 없군요.

 

그렇게 노트를 구경하고 있으면, 치앙린이 일어납니다.

 

7:05PM라비나: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고 보니, 치앙린이 최근에 자주 졸거나 잠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전에는 오히려 걱정스러울 정도로 잠을 자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일어난 치앙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가 거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자리를 성큼성큼 벗어납니다.

 

 

오지, 마. 　　

 

입을 가리고 꽤 힘겹게 말한 그는, 급하게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연신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그가 떠난 자리에는 달콤한 향이 남아 있습니다.

 

7:12PM라비나:(거북한 얼굴이 마음에 걸려 시선으로 널 쫓았다. 오지, 마. 짧은 네 말소리. 그 말에 따라가려다 멈칫하고 따라가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지 말라는 네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너의 뒤를 쫓아간다)

 

그를 따라 나선 교실 밖 복도에는 붉은 햇빛이 창틀 사이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7:14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선이 닿은 복도의 바닥에서는, 꽃잎이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언젠가 보았던 무독의 우미인화와 다른,

 

독성 짙은 흰색의 양귀비.

 

그 꽃이 만개한 채, 복도의 바닥을 장식해 당신의 신 아래서 뭉개집니다.

 

...

 

당신이 화장실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짙은 꽃향기가 납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기에 눈앞이 아찔해집니다.

 

화장실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7:19PM라비나: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화장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침소리와, 작은 신음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토해내는 소리.

 

이건... 치앙린의 소리인가요?

 

...

 

그리고,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당신의 눈앞은 하얗게 물들어갑니다.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

 

...

 

깜빡, 깜빡.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라비나, 당신의 방이에요.

 

언제 돌아온거죠?

 

당신은, 라비나는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방금 본 것은 꿈?

 

당신의 망상에 불과한 건가요?

 

1년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끝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

 

당신의 방은 아침에 나왔을 때와 같습니다.

 

침대와 책장, 책상이 있습니다.

 

7:23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딘가 이상한 책장에서,

 

당신의 것인지도 모를 책을 한 권 발견합니다.

 

 

[ 거대한 빛의 구체가 틈새를 향해 모여들었다. … 시공간의 가장 먼 곳보다 더 멀리 있는 혼돈의 핵 속에서 영원히 부글거리는 원초적 점액…] 　　

 

...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병이 발견된 지 대략 1년째, 인체에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꽃을 토하는 증상을 보입니다.

 

꽃의 종류는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독특한 증상에서 이름을 따와 해당 병을 '하나하키 병'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병의 원인은 짝사랑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짝사랑의 감정이 해소되자 병이 나았다는 사례에 대한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

 

...

 

그러고 보니, 방금 꿈에서 본 그 날 이후로 그는 일주일간 학교를 오지 않았다.

 

가끔 학교에 못 나오긴 해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별 일 아닐 거라고,

 

다음에 만난다면 잔뜩 잔소리를 해 줘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너는,

 

물 속에서 잠든 차가운 시체가 되어있었다.

 

그때, 그를 찾아가 봤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 방에 가봤더라면.

 

하물며, 그의 집 앞에라도 가봤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

 

...

 

■■■가 눈을 깜빡인 그 순간, 주■ 풍경이 ■바뀝니다...

 

.

 

.

 

.

 

당신이 서 있는 곳은, 그의 집 앞입니다.

 

결국 그조차 병원행을 거부하여 부러지고 다친 몸은 수습하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었습니다.

 

이것도 단순한 환상인 걸까요?

 

생생하게 느껴지는 오감이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7:30PM라비나: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하늘은 붉습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노을의 색.

 

몇 번이고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색.

 

날짜를 확인해보면, 연속된 숫자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7월 8일.

 

그가 죽기 하루 전날입니다.

 

7:34PM라비나:(환상인가? 꿈인가? 현실인가? 그런 것을 생각하기엔 마음이 너무 급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 손잡이를 잡는다)

 

문 손잡이를 잡으면,

 

누군가의 집이라는 것이 무색하도록 쉽게 열립니다.

 

지금은 그도, 그의 아버지도 모두 이 집에 있을텐데요.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면,

 

가까운 방에서 백발의 남자가 나오는 것이 보입니다.

 

 

7:35PM백야: ...무슨 일이시죠? 현재 회장님께서는 집을 비우셨습니다만.

 

7:36PM라비나:..린, 치앙린을 만나러 왔어요.

 

 

7:36PM백야: ...린을요? 친구인가요?

 

7:37PM라비나:(고개를 끄덕였다) 네, 친구예요.

 

 

7:38PM백야: 뭐, 그렇다면. 그 아이에게 사람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네요. 따라오시면 된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께서 불편해하실 만큼 아파서요.

 

그렇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그가 데려간 곳은,

 

그저 그의 방이 아닌,

 

집 안의 가장 깊숙한 곳.

 

서재의 안을 지나, 그 바닥을 열고 계단을 내려간 곳.

 

어딘가 익숙한 지하실의 가운데입니다.

 

 

7:40PM백야: 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함구 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린은 저 끝에 있을테니... 가서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지하실의 기둥 뒤, 가장 끄트머리를 가리킵니다.

 

7:45PM라비나:이런 곳에 왜 린이.. (이런 깊숙한 지하실에 린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사람의 반응은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머리카락이 기둥 뒤로 튀어나와 있습니다.

 

아마도 치앙린이겠지요.

 

그리고 그의 가까이로 다가가면,

 

탁자 위에 진료차트처럼 생긴 것이 놓여있습니다.

 

 

7:50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탁자 주위에는 구겨진 종이 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펴서 읽어본다면,

 

 

ㅡ라비나, 나비. 　　

 

당신에게 쓰려고 했던 것 처럼 당신의 이름만이 쓰여있습니다.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아이가 죽은 이유는…

 

...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이 어둡게 물들어갑니다.

 

.

 

.

 

.

 

병실의 풍경을 어둠이 집어삼킵니다.

 

당신은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서 있습니다.

 

바로 눈 앞에 있을 당신의 손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도 꿈인가요?

 

7:54PM라비나:

SAN Roll

기준치:	54/27/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주변을 둘러보면,

 

저 멀리에 작은 불빛이 보입니다.

 

빛을 향해 걸어가도 발을 딛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당신은 빛에 가까워져 갑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

 

어두운 공간 속을 헤치고 나아가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시간■ 되돌■고 싶나?" 　　

 

어딘가 뜨문뜨문, 들리지 않는,

 

하지만 공간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위압적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그때, 당신의 머리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이제야 기억이 나나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빌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그렇게 허무하게 너를 빼앗아 가지 말라고.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당신에게 물었죠.

 

당신의 답은 물론…

 

...

 

꿈이 아니에요, 라비나.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치앙린을 다시 만날 기회.

 

너와 여름을 함께할 기회.

 

그리고,

 

너를 살릴 기회.

 

어째서 잊고 있었더라.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뒤죽박죽이었던 기억들이 맞물려간다.

 

어느새 나는 빛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네모난 문이라도 되는 듯, 어둠 속에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

 

 

눈을 뜨세요, 라비나.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

 

...

 

당신은 눈을 뜹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입니다.

 

지금 시간은 6시 53분.

 

창에 쳐진 커튼에 노을의 붉음이 베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 커튼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에 따라 붉은빛이 일렁이며 어두침침한 교실 안으로 흘러듭니다.

 

그 날.

 

바로 그 날입니다.

 

늦여름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날.

 

네가 사라져 버린 날.

 

너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름날.

 

교실 안에는 당신만이 있습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치앙린은 옥상에 있을 것이라고.

 

8:02PM라비나: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치앙린의 책상에서 삐져나온 봉투를 발견합니다.

 

백색의, 편지봉투도 아닌 현금봉투.

 

하지만, 열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안에서 느껴지는 종이는 나중에 열어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는 저 위에 있을테니까요.

 

8:06PM라비나:(봉투를 열어보려다 나중에, 린을 구하고 나서 열어보아도 늦지 않을 것 같기에 일단은 봉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내가 더 늦기 전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넘어질 듯이 뛰어갔다. 네가 있을 옥상으로)

 

당신은 옥상을 향해 달립니다.

 

복도를 지나치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폐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조금은 녹슨 철문 틈으로 붉은빛이 길게 뻗어 나와 있습니다.

 

문을 열자, 눈부신 햇빛이 쏟아집니다.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힙니다.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

 

느긋하게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 서있는 치앙린.

 

그는, 어딘가 공허했던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을 바라봅니다.

 

8:08PM张强林:안녕, 나비.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어. 편지는 읽어봤어?

 

8:10PM라비나:안, 윽.. 안녕, 린. (숨이 차 제대로 말을 하기 힘들었지만, 내게 인사를 하는 너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너를 눈에 잠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

편지는.. 아직 못 읽었어.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어서.

 

8:12PM张强林:해야 할 일? 옥상에서는 오늘 뭔가 없었을텐데. (저 철창 너머를 잡고 있다 네 눈가에 고이는 눈물에 손을 떼고 네 눈가를 훔친다.) ...울지마, 슬픈 일이라도 있었어?

 

8:15PM라비나:..늦지 않게 너랑 만나는 거. 그게 내 해야 할 일이야. (말을 이어가다 제 눈가를 훔치는 네 손길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이 다정한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보고, ..보고 싶었어, 린.

 

8:17PM张强林:...우리는 만났어. 지금도, 예전에도. ...기억은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봐, 이제는 말, 잘 하잖아. (너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동안의 무표정이 무색하도록 편안한 웃음이었다.) ...나도 보고싶었어. 그리고, 보고싶을 예정이지.

 

8:20PM라비나:그러게, 이젠 말을 잘하네. 더는 내가 더 가르쳐 줄 게 없어 보여. (편안한 웃음.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왜.. 왜 보고 싶을 예정인데..? 보고 싶으면.. 그냥 보면 되잖아. (의미심장한 네 말에 불안해져 떨리는 손으로 네 손목을 잡았다)

 

8:23PM张强林:뭐...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각나면 얘기해. 호칭도 바꿔 줄 테니까. (네 말에 피식, 웃음지었다. 언제쯤 기억해주려나. 물론, 다음 생, 그 다음 다음 생에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나의 임무였으니.) ...죽어야하니까? 네 앞인데도 또 죽어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너에게 해가 된다. 그러니까 죽을 수 밖에 없어. (떨리는 네 손을 보며 말했다. 이를 어쩐다. 또 다시 이런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는데.)

 

8:30PM라비나:..지금은 누나라 부르지 마. 나비. 꽤 귀여운 호칭.. 이잖아. 그러니까 나비라고 불러.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정말 잊을 수 있는 일들이 아닌데. 너처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는 또 혼자 모든 걸 끌어안고 내 곁에서 떠나는 게 좋기라도 한 걸까. 그럴 리가 없는데도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나 혼자 남겨두고 떠나게? 싫어. 그런 건 싫어. 또 나만 남겨두고 멋대로 가지 마. 내 곁에 있어. (언제나처럼 네게 고집을 피우고, 응석을 부렸다)

 

8:38PM张强林:...기억나? 내가 한 맹세와 모든 말. 그리고 죽음. 그 모든 것. 그러면... 나 한번만 안아주라. 약속은 지켰으니까. 널 찾아가진 못했어도 널 만나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잊을 수 없었다. 널 사랑하고, 다시 넘지 못할 산이 다가오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너를 기다리고, 칼을 뽑아 겨누는 것 뿐이었는데.) ...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 내가 널 사랑하는게 이유라는데, 나는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내가 나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에게 피해를 준다니, 그건 괴물이잖아. 옆에 있으면 독인 꽃일 뿐이야. 양귀비지. 잘 어울리네. (제 입에서 흘러나왔던 꽃을 떠올렸다. 애석하게도, 내 탄생화였다. 흰색의 양귀비. 망각에서 태어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참으로 알맞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8:49PM라비나:전부, 전부 기억해. 린, 고마워. 나를 찾고, 나와 만나려고 노력해주어서 고마워. (사랑하는 너를 품에 안았다. 그동안 너와 함께했던 모든 기억을 잊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고, 또 나와의 약속을 지켜준 것, 너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워서 너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너는 네가 말한 것만큼이나 노력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을 잘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어 준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따스한 네 품을 더욱 파고들었다) ..그 병 얘기지? 하나하키 병. (꽃을 토해내는 병은 그 병밖에 없었고, 네 진료차트에서 봤기 때문에 네 병명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네 병을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니야?

 

8:55PM张强林:그러면 됐어, 나는 저승에서 널 기다릴 때도 지금의 내가 이전의 생을 기억하리라는건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이번에도, 저번에도... 날 찾아와줘서 고마워. (제 품을 파고드는 너에 너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 작은 품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가슴 언저리에서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난 내가 왜 꽃을 토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멍청이였으니. 주인에게 반항할 줄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너와 백야의 도움만 받고 있는. 그러니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리라. 신문 기사를 보고 그냥 그렇겠거니, 했겠지. 너를 이렇게나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응. 치료는... 안된다고 하던데. 아버지도, 스승도, 의사노릇 하던 아저씨도 전부 그렇게 얘기했어. 애초에 이런 병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치료가 가능할리 없잖아. (자조적으로 웃으며 이야기했다. 전에는 멀쩡했는데. 어쩌다 이런 병이 창궐했다. 꼭 세계가 나의 사랑을 막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9:11PM라비나:..그러게. 나도 내가 이전의 생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고, 너도 이전의 생을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하필 그 사실을 지금 알게 되다니. 운명의 신도 참 비극적인 걸 너무 좋아한다니까. 그래도.. 네 어렸을 때를 봤으니 됐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리숙해서 말도, 감정 표현도 서툰 치앙린은 이전 생의 치앙린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들뿐이었다. 이전 생에서 연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내 한을 풀기엔 딱 좋은 기회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네가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전생에서 너와 함께한 마지막 기억을 되새길 만큼 그리운 너의 품 안에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야말로 고맙지. 내가 널 찾아낼 때까지 나를 기다려줬잖아. 그러니까, 내가 더 고마워. (눈물이 고이고, 맺혔다가 아래로 흐른다. 비어있던 마음 한구석이 너로 인해 다시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너를 사랑하나 보다) ..짝사랑의 감정을 해소하면 치료되는 게 아니었어? 분명.. 뉴스에서 그랬는데. (치료가 안 된다는 말에 놀라 네 품에서 벗어나 너를 바라본다. 어떻게든 너를 살려야 하는데. 치료가 안 되면 내가 과거로 돌아온 의미가 없어진다. 난 벌써 너의 죽음을 두 번이나 겪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지만, 이렇게 이르게 너를 잃는 건 다신 겪고 싶지 않다)

 

9:20PM张强林:하, 하하... 그러게. 야속하기도 하지. 내가 사랑하는 널 탐냈나봐. 하지만 나는 결국 네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너에게 가지 못하는 날이면 매번 네 생각을 했어.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냥... 무슨 생각이든 했어. 어제... 네가 찾아온 날. 그 날에도 오늘은 네 생각을 안 했다면서, 그러면서 네 생각을 했다.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거 알잖아... (네 말 하나하나를 귀 기울였다. 마지막이었기에. 내가 무너져가는 여름밤, 닳아버린 청춘 속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사랑 말고는 없었다. 멍청한 나는 복수심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러니, 정말 네가 전부였다.) 그런...걸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내가 계속 얘기했지. 나는 널 사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짝사랑의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은... 내가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야.. (제 품에서 벗어나는 너에 네 손목을 잡아 조금 끌어당겼다. 마지막인데, 굳이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짝사랑의 감정 해소는... 내가 널 사랑하지 않거나, 네가 날 사랑하거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뿐이었으니.)

 

9:35PM라비나: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우리에겐 서로밖에 없다는 걸. 낭만적이면서도 잔인한 이야기지. ..이런식으로 네게 낭만을 알려줄 생각은 없었는데. (네 등을 꾸욱, 잡았다가 토닥여보기도 하고 쓸어내려 보기도 한다. 이런 작은 시간이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소중했으므로 온전히 너를 느끼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눈을 깜빡이니 네 어깨가 눈물로 적셔졌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이야기는 참 셰익스피어가 보면 좋아할 만한 소설 주제가 아닌가 싶었다. 이전 생을 넘어 현재 살아가는 생에서까지 서로를 그리워하며 만났는데 이런 상황이라니. 난 역시 희극이 좋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고, 누구도 슬퍼하지 않으며, 당장 내일 세상이 무너진다는 소리에 기뻐할 틈 없이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가 좋았다. 우리의 인생도 그 흔해빠진 희극들처럼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 텐데) 왜.. 왜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데. 네가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거나, 내가 널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네게 끌어 당겨져 가까이 다가 가진다. 제 곁을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에 네 손을 잡고 제 손가락을 네 손가락 사이, 사이에 끼워 넣어 깍지를 꼈다. 하지만 이윽고 들리는 네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9:47PM张强林:(등을 잡았다가, 토닥여도 보다가, 쓸어내기도 하는 네 손을 느꼈다. 내가 언제 너에게 이런 어리광을 부려보겠나. 스물이 넘어 저승까지 한 번 갔다 온, 나이는 먹을대로 먹은 노장이 껍데기가 어려졌다고 투정을 부리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이런 푸른 청춘을 보여주어서. 저 담벼락의 파란색 페인트조차 나에게는 너와 함께 걷는 길 위의 하늘처럼 푸른 색이라 기꺼웠다.) 낭만은... 이미 네가 전생에서부터 나에게 알려줘 왔으니 됐어. 이보다 더한 낭만을 줄 수는 없을거야. 확신하고 있어. 누나... 아니, 나비의 활기찬 모습을 보는 것 만큼 낭만적이고 행복한 일은 없었는걸. 어쩐지, 머릿속에서 사사건건 부러워하던건 나였구나. 역시 과거의 아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제 말이 우스워 픽 웃었다.) ...그야, 짝사랑을 끝내려면 내가 널 사랑하지 않거나, 네가 날 사랑하는 방법 뿐인데 전자는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고, 후자도... ... (제 말에 침통하게 말하다 제 손가락을 엮어 깍지를 끼워오는 널 보며 입을 닫았다. 가능할...까? 어쩐지, 이번 생에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예전에 했던 상상들이 떠오른다. 네가 아프지 않았을 때,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만난다면 어땠을까. 그 염원이 업과 함께 실제가 된다면 딱 이런 상황일 것이었다. 그때라면 네가 날 다른사람에게 줄 사랑까지 얹어서 나를 사랑하겠노라 말한 것이 생각났다.) ...나비, ...날 사랑해?

 

10:08PM라비나:(네 어리광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몸이 어려졌다고 하는 행동도 어려진 너는 참 귀여웠다. 지금까지 봐왔던 린의 행동도, 지금 기억이 돌아온 너의 이런 행동도 전부 귀여웠고, 나에겐 기꺼웠다. 내친김에 네 머리도 한 번 쓰다듬어본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네 머리를 쓰다듬어 보겠나. 지금 생각해보면 너와 이렇게 같은 학교를 다닌 것에 감사했다. 같이 수업을 듣고, 옥상에 올라와 푸른 하늘을 함께 바라보기도 하며 너와 내가 충분히 누리지 못하였던 푸르디푸른 우리의 청춘을 보내게 해준 하늘에게 감사했다) 이번엔 내가 좀.. 많이 활발하긴 했지. 많이 어리잖아. 네가 이전의 생에서 봤던 나는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어른이었다고. (이전 생과는 정반대되는 제 모습을 떠올리자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전 생에서도 그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 활기찬 성격 그대로 자라났을 터였다) 후자는..? (내가 널 사랑하게 되는 것.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나를 향한 사랑을 확신하면서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은 확신하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직접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는 건가?) 어떤 것 같은데? 내가 널 사랑하는 것 같아? (너와 손을 맞잡은 손을 끌어당겨 제 손등에 제 뺨을 기대며 살포시 웃었다. 이제는 너에게 확신을 줄 차례였다) ..맞아, 린. 나는 널 사랑해. 이전 생에서 네게 다 주지 못한 사랑을 전부 너에게 주더라도 부족할 만큼이나 너를 사랑하고 있어. (네 손등에 입을 맞춘다. 이전 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아직 다 주지 못했던 나의 사랑을, 오직 너만를 위한 애정을 너에게 준다. 너를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네게 잔인하리만큼 아름다웠던 그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며 웃었다. 이전 생에서 했던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랬더라면 평범하게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방금,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10:28PM张强林:(제 머리를 쓰다듬는 네 손길에 얼굴을 네 어깨에 묻고 부비적댔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얼굴에 티가 나지 않는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가. 그래도 귀는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라 있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제 어리광을 받아주는데. 태어난 뒤 나에게 이런 사치는 당연한듯 허용되지 않았었다. 다정한 스승조차 어리광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 유일한 안식처. 어쩌면 나를 인정해 줄 사람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기댈곳이 되어 기쁘다는 마음 아래 숨겨져 있었을 마음.) 그게 좋은거야, 나비. 나는 네가 이렇게 자랐더라면... 딱 좋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전의 너를 이렇게 되돌려 놓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고. 나는... 네가 나를 옆에 두고도, 혹은 내가 없더라도 행복하길 바랬어. 어쩌면 이번 생은 저번 생의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전부 보여주는 것일지도 몰라. 업과 염을 엮어 시를 쓰는 나에게 딱 맞는 생이네. 차사에게 부탁한 것이 의미가 있었나... (네 말에 푸스스 웃었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너에 귀엽다며 연신 웃어댔다. ...음, 그건... 내 문제야. 나는 누군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있고. 그냥, 좀... 안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줘. 애초에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흉내내는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전생의 내가 좀 똑똑했지, 라고 웃어넘겼다. 아마 매번 불안에 떨 것이다. 만약 네가 날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고. 그러니 날 사랑하지 않는 널 보는게 더 편했을 지도 모르고. 결국 또 다시 과거의 아집에 잡힌 사람의 의미없는 반항에 불과했다. 인정해야 했다. 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지금 내 앞의 나비는,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고.) 정말, 그러지 마... 그럴때마다 내 심장은 위험할 정도로 뛰는거 알면서. (난처하게 웃었다. 네가 웃는 걸 보면 심장이 저 끝까지 내려앉는다. 기분은 약을 한 것 처럼 붕 뜨고, 온 몸의 혈관이, 아니... 영혼이 북을 두드리는 것 처럼 뛴다. 오랜만에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 ...나도, 나도 사랑해. 앞으로의 모든 생에서도, 이 전생에서도. 내가 한 맹세와 언약을 모두 걸어서 너에게 말할게. ...나도, 나비를 사랑한다고. (손등에 닿는 네 입술이, 벅차오를만큼 느껴지는 네 애정과 사랑이 느껴졌다. 기뻐서 눈물이 흘렀다. 웃는 입가와 어쩔줄 몰라하는 웃음 사이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나는 너만 보면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결국 너와 헤어졌을 때도, 돌아와 너와 다시 마주한 지금도. 나는 널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제 아버지의 제약은 네 앞에서만 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11:01PM라비나:(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부비작대는 너에 푸스스 웃음이 터졌다. 제 목을 간지럽히는 네 머리칼 때문에 시선을 네 쪽으로 돌려 슬쩍 본 너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자 그 귀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괜히 붉게 잘 익어가는 네 귀를 한 번 쓸어보고는 다시 네 머리칼을 헤집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항상 네게 기대어 네 보살핌 없이는 제대로 살아가지도 못하던 내 품에 네가 안겨 어리광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생소하고 간질거리는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비록 동갑의 나이지만, 전생의 나이까지 다 합하면 내가 엄청나게 나이 많은 연상이었으므로 이제서야 연상 노릇을 하는 기분이었다. 근데.. 전생의 나이까지 합하면 내가 너무.. 너무 연상 아닌가? 갑작스러운 나이에 관한 문제 때문에 너를 쓰다듬던 손이 멈칫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차차 풀어가야겠다) 그랬어? 노력했네. 그래도 저번 생의 마지막에는 이번 생에서 네가 봤던 내 모습과 유사하게 행동했으니 네 노력은 빛을 발했네. 너 없이도 행복하게.. 라. 그건 노력해봤는데 저번 생에선 잘 안됐어. 역시 힘들더라. ..그래도! 이번 생에선 잘 지냈어. 네가 차사한테 뭐라고 부탁했는지는 모르지만.. 얼추 엄마와도 잘 지내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으니까. (네가 원했던 대로 잘 행복하게 살아왔으니 칭찬해도 된다는 듯한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하지만 내가 귀엽다며 연신 웃어대는 너를 보자 놀리지 말라고 타박하며 제 뜨끈한 뺨을 문질렀다) 참.. 이상하네. 내겐 사랑받을 행동만 골라 하는 주제에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그 습관은 나랑 있으면서 고치자. (괘씸하다며 네 코를 가볍게 꼬집고는 싱긋 웃었다. 나와 함께 살아가며 너의 그 나쁜 습관이 고쳐지기를 소망했다) 다 아니까 그런 거야. (난처하게 웃는 네 모습에 더욱 장난기가 짙은 웃음을 지었다. 너의 그런 반응이 재밌어서 짓궂게 놀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정말 낭만만큼은 완벽하게 배웠네.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모든 생과 내가 살아온 모든 생에서 한 약속과 너에게 줄 사랑을 걸고 앞으로 너를 평생토록 사랑하고, 사랑할게. (누구보다도 밝게 빛나는 웃음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웃었다) ..하하, 네가 우는 걸 본 건 이걸로 두 번째네. 그 정도로 감동 받았어? (네 눈가를 훔치며 말하는 자신도 눈앞이 일렁거릴 정도로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맺혀있었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고여있던 눈물이 흘러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가 앞으로 무수히 많이 경험할 끝과 시작에는 언제나 눈물이 함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1:23PM张强林:(뜨끈한 귀를 만지는 네 손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거, 참... 이런거에 약한걸 다 알면서도 이런다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좋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싶었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여주고... 그냥,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해온 고생에 대한 보답인가 싶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다음 생에 너로 태어나 죽을만큼 너를 사랑하고, 사랑받지 못한 나도 거들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네가 이렇게나 날 사랑해주는데 내가 네가 되어야 할 필요가 무어 있을까. 분명 우리는 결국 언제가 되었든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었다. 연하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나한테 응석 좀 부리는게 어때서.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자기합리화를 했다. 저 위에서 신선이 되었을 사형제들이 치를 떠는게 눈에 보였다. 기어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행복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으니까. 내가 네 사랑을 온전히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건... 됐어, 이제. 지금은 잘 살고 있잖아. 행복하니까... 괜찮아. 더이상 과거에 묶여 살지는 않으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이렇게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앞에 있는데 그걸 두고 저 뒤로 가 있는건 내 성미에 맞지 않는걸 잘 알잖아. 차사에게는... 네가 행복하게 해 달라고 빌었어. 잘 된 것 같지. 너는 내가 행복을 비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잖아. (의기양양한 표정에 널 끌어안고 잘했어, 잘했어, 하고 등을 토닥였다. 놀리지 말라고 타박하며 뺨을 문지르는 너는... 여전히 귀여웠고.) ...알겠어. 나는 배우는게 빠르니까 나비가 알려준다면 금방 고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빨리 아버지를 처리해 버려야겠어. 내가 나비의 집에서 그런걸 배울 수는 없을테니 말이야. (제 코를 꼬집는 너에 미간을 찡그렸다, 결국에는 마주 웃었다. 언젠가는 해야할, 생에서 대물림되는 업과 같았다. 아버지와 스승은. 결국은 죽이는 수 밖에 없겠지. 그 둘이 있다면 제 앞의 사랑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데 어쩌겠는가.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저번 생 처럼 업만을 뒤집어 쓴 채로 살지는 말아야지.) 이번에는 모든 것이 전보다 빠르네. 기다림이 적어서... 꽤 좋은 것 같아. 나는 널 사랑하고, 너도 날 사랑하고. 그냥... 모든게 마음에 들어. (제 눈물을 닦아내는 너에 코를 조금 훌쩍였다. 행복하기에 울 수도 있는거였구나. 하나의 지식이 늘었다.) 이번에는 못 져줄 것 같다. 설사 책상 위에 올라가더라도 내가 더 감동받았어. 내 기다림이 결국 너를 찾아냈다는데, 감동받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나비도 울고 있잖아. 이게 뭐야. 우리는 결국 헤어질 때도, 만날 때도 눈물을 봤네. (복수와 희망, 행복과 생존의 모든 굴레를 넘어 서로를 마주할 때면 눈물이 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것조차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당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진심을 전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또박또박 전달합니다.

 

몇 번이고 당신의 진심을 되묻는 치앙린의 목소리.

 

외로웠던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

 

기다림의 끝.

 

그가 웃습니다.

 

꽃처럼 환하게,

 

눈앞이 아찔할 만큼 환하게.

 

바람을 타고 흘러오던 꽃향기가 물거품처럼 흩어집니다.

 

손끝에 닿는 생생한 감각.

 

꿈이 아닙니다.

 

 

"사랑해, 나비." 　　

 

여름의 중천,

 

노을이 지는 풍경.

 

하루의 끝.

 

하지만 그 어감이 그리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할 여름이 있었으며,

 

눈을 뜬 다음 날을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므로.

 

그러니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겁니다.

 

 

End 1. 나는 오직 너의 것으로. 너는 다만 나의 것으로. 　　

 

다만; 부사.

 

앞의 말을 받아서 예외적 상황이나 조건을 덧붙일 때 쓰는 말.

 

혹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치앙린, 라비나 생존.

 

생환 보상 이성 회복 4, 앞으로의 행복한 미래.

 

두 사람은 몇 번이고 함께 여름을 맞을 겁니다.

 

더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겠죠.

 

 

[여름, 꽃, 우울.] 完. 　　

 

 

 

▼라비나, 나비에게.